작성일 : 21-02-11 09:49
코로나의 혼탁 속에 Biden 행정부와 한반도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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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의 혼탁 속에 Biden 행정부와 한반도

한반도와 미국의 관계는 1882년부터 시작이 되었고, 1945년 남-북 분단에 따른 한국 전쟁 이후 한반도의 현상을 변화시키려는 시도는 여러 차례 있어 왔다. 그런 시도들이 내포했던 의도, -또는 실패 여부와 관계없이- 와는 상관없이 그런 시도들이 한반도 문제의 해결에 어떤 도움을 주었는가, 라는 의미에서 이것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그러한 시도들이 이 지역에서, 또는 한반도 문제에서 관건적인 입장에 있었던 미국에 의해 주로 시도되었다는 것은 되돌아 보는 입장에서, 미국에게 어떤 落穗(낙수)를 주었다고 보아야 하는 가?
미국의 의도와 관련되어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그 정책적 내용을 기준으로 볼 때 그 변화의 꼭지점을 어디에 두고 구분할 수 있는가가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서 냉전 체제의 해체와 같은 세계 정치의 변화를 그 기준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과 같은 특정적 환경의 변화를 그 기준으로 하여 한반도 문제의 논의의 새로운 전개의 기반으로 할 것 인지로 나누어 보는 것이다. 본인은 후자가 그 정책적 의미의 순리에 따라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위한 중요한 모멘텀을 형성하는 데서 더 의미 있는 것으로 보고자 한다.

북-미 관계 전개의 냉전적 배경
한반도에서의 휴전 이후, 미국과 북한이 그 관계의 개선, 또는 수립을 위한 대화의 창을 열게 된 계기가 어떤 것이었는가의 문제는 그 대화를 하게 된 동기가 무엇이었는가, 또는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가 라는 측면에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단순한 무력 충돌의 마무리를 위한 것이었는가, 아니면 양국 간의 관계 개선, 또는 관계 수립을 위한 것이었는가 후자의 의미에서 본 대화는 미국-북한 간의 협정에 의한 관계 진전을 위한 것으로 보는 경우, 이 관계는 90년 대 이후라고 할 수 있다.
전쟁 직후의 북한-미국의 관계는 냉전의 환경 속에서 적대적인 상태로 지속되었고, 특히 Kissinger 의 북경 ( 1971,7,) 방문을 앞두고 북한은 한국과 미국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여, 1968년 1월의 프에블로 호 사건, 1969년 4월의 EC-121기 격추사건 등으로 도발하였고, 이 당시 상황은 중국과 소련을 당황하게 한 사건이기도 하였다. 동시에 북한은 1968년 1월 김신조 청와대 침투사건을 일으켰다.
이것은 Nixon 후보가 68년 대통령 선거에서 Vietnamization 을 주창하면서 월남으로 부터의 철군을 언급한 것과 관련이 있으며, 미국은 1969년 7월에 Guam 선언을 한 후 중공에 비밀리 접근하여, Rapprochement 을 시도하였던 때이다. 이 당시에 중공은 미-중공 간의 접근을 성사시키기 위해 한번도의 안정적 상황을 강조하면서, 남-북한 간의 회담을 종용하면서 미국은 한국에, 중공은 북한에 각각 압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냉전 시기에 있었던 한반도에서의 변화를 추구하는 움직임은 닉슨, 카터에 이르기 까지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인 남-북한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외부 압력에 의해 대화가 추진되어 왔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1979년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소련의 침공 이후 국제 정세가 악화된 상태에서 국제 정세와는 관계없는 국내 정치적 요구에서 80년대에 남-북한의 대화와 접촉이 일어 났다는 것은 앞으로의 남-북한 관계에 대한 변화의 요인으로 남-북한 자체의 필요나 요구가 더 지배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암시를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소비에트 정권의 붕괴로 미국의 주도적 질서체제 아래에서 국제 정세는 아랍 기본주의 단체들의 테러와 이에 대한 미국의 대응으,로 더 한층 긴장된 상태에 놓이게 되었으나 반면 남-북한 관계는 냉전체제의 해체로 인한 영향으로 그 접촉이 빈번하게 이루어져 90년대에 만 총 172회의 회담이 이루어 졌다.  
90년대의 남-북 관계의 특징은 국제 정세의 변화가 남-북관계에 영향을 주는 형태로 남-북 관계에서도 92년 남-북한이 UN 에 가입하고, 남-북 간에도 상호 체제를 인정하는 기본합의서가 채택되었고, 체육 분야를 비롯한 남-북한 교류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남-북 정부 간에도 불가침, 비핵화 공동 선언 등이 채택되었으나 관계 정상화 까지 이르지는 못하였다.
90년대 일어난 김일성의 사망, 김 정일의 등장, 등으로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 배경을 설명할 수도 있으나, 이러한 변화 중에 가장 특기할 사건으로 미-북한 간에 핵 문제를 다루기 위한 Agreed Framework ,협정이 체결되었다는 것이다.
Clinton 행정부에서 북핵 위기로 거론되는 것은 1994년 6월경부터 시작된 북한 핵 관련 정보에 대해 미국이 크루즈 미사일과 F-117 스텔스 전투기를 보내 파괴하는 작전계획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작전 계획을 두고 북한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던 중, Carter 전 대통령이 북한에서 김일성과 회담을 하고, ( 한반도 문제의 역사적 성격,: 현대 한국 외교사 ( 1920-2000 ), 김영식, 한국 학술정보, 2004, p. 359  참조) 북한 핵 무기생산을 위한 계획을 동결하고, 그 대신 영변 원자로를 대신할 수 있는 경수로 원자로를 공급하는 문제로 북한 핵의 위기를 넘기는 과정으로 등장한 것이 약 4개월 간의 시간 후에 탄생한 Agreed Framework 이다. ( CNN October 4, 1999, 참조, Leon Segal, The North Korean Nuclear Crisis,: Understanding The Failure of the 'Crime-and-Punishment' Strategy Arms Control Today, 년도 날자 미상, 참조)
물론 이런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북한에 대한 공격이 전면전의 상태로 될 가능성, 그리고 초기의 전투에서 백만 명 이상의 인명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시된 것이 그 결정에 도움을 주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지금도 미-북한 관계에서 언급되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의 포기 등을 언급한 2005년 9월의 6자 회담 공동 성명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으나, 그 당시 이것을 북한이 제의한 내용에는 경수로 원자로 제공에 대한 요구를 북한이 재차 하였지만, 2006년 6월 1일 KEDO 에서 그 활동의 종료를 선언함에 따라 무위로 그치게 되었다,( September 19, 2005 Joint Statement of the Six Party Talks, Monday September 19, 2005, National Committee on North Korea )
2006년 7월 북한은 대포동-2 장거리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였고 2006년 10월 9일 풍계리에서 1차 핵실험을 하였다. 그 후 김계관 은 북한의 2005년 공동성명과 관련하여, 비핵화는 하되 일방적으로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New York Times, North Korea says I t will abandon Nuclear Efforts, Sept 19, 2005, Joseph Kahn )
부분적으로는 미국이 북한을 DPRK 로 호칭하고 주권국가 임을 인정한 것으로 밝혀 졌으나 한반도에서의 냉전적 대립의 종식을 가져올 용단있는 제안은 현실화 될 수 없었다.

Biden 행정부의 대 북한 접근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새로 등장한 Biden 행정부의 한반도 접근에 관한 바람직한 방법, 또는 대안을 모색하고자 하는데 있다. 다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역대 미국 행정부의 한반도 접근에서 보여지는 시행 착오나 이 지역에서의 평화 문제를 가볍게 보려는 경향을 불식시키고자 하는데 있다.
Biden 행정부가 그 전 행정부에 대한 정책적 부인을 앞세운 정책적 전개를 통해 America is back 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와 더불어 이 지역에 접근하려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나, 최근에는 다시 중국에 대한 봉쇄, 미국의 경제 이익에 대한 고려 등이 고개를 들고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Biden 정부에서 북한 핵과 관련하여 신선한 견해를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는 김정은 위원장의 북핵 회담에 응하는 입장을 독특한 것으로 보려는 Jake Sullivan 의 입장일 것이다. ( 본 칼럼 및 News and Comment, 2020, 12,11, Biden 행정부의 출범과 한반도: 변화의 모색, 참조 )
2007년 안식년을 맞아 나는 프랑스 3대학 알랭 교수의 도움으로 그곳에서 연구를 할 목적에서 무려 22년 만에 다시 빠리를 방문하게 되었다. Allain 교수의 소개로 1대학의 Hugues  Tertrais 교수를 만났고, Tertrais 교수가 국제 학술회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에게 그 회의의 주제를 “ La Mer et la Chine “ 로 하는 것을 건의하였다.
중국인 교수들과 북 구라파 교수들도 참석한 상당히 큰 규모로 열린 이 학술회의는 프랑스 정부의 지원도 받아 성황을 이루었으나, 당시의 중국의 문제는 이 곳에서는 주요 문제로 부각되지는 못한 것으로 보였다. 본인은 서해 ( 황해 ) 에서의 미-중의 전략적 관계에 관한 주제로 이 회의에 참석하였고, 발표된 논문은 주로 2006년부터 미국에서 발간된 자료를 중심으로 중국의  Game Chager 로 등장한 DF-21D, 잠수함, Mine 등과 같은 중국의 부상을 주목한 것이었다.(Guerres mondiales et conflits contemporains, n° 239/2010, La position stratégique de la Chine dans la mer Jaune et la compétition sino-américaine contemporaine dans la Péninsule coréenne )
중국의 Mace 로 소개하면서 군사적 위협을 강조하는 미국의 문서들이 2006년부터 나돌기 시작한 후 15년이 지난 지금 미-중국의 관계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미군 함정의 대만해협의 통과 시도로 양국 간의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관계로 발전하였다.
중국이 대국이라는 말을 강조하는 것은 어떤 의미로 미국에게 받아 들여 질 것인가, 지금 미-중의 첨예한 대립 의식이 자리잡고 있는 데서 이런 발언은 중국을 편드는 것이라고 해도 별로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중국은 해안선을 제외한 육상 국경만 해도 총 22,000km 의 길이와 총 14개 국과 그 국경을 맞대고 있다. 인구도 14억 4천만을 넘는, 세계 인구의 18%를 차지하는 대국이다.
최근에 중국에 대한 봉쇄를 강조하는 미국에 대해 Myanmar 에서의 쿠데타는 그 문제가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최근 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 라는 새로운 구성체로 중국을 봉쇄하려는 움직임이 있으나 인도는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국제적 동맹관계에서의 전통적인 중립적 태도를 고수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 정부는 Biden 행정부에게 한반도 평화 Process 에 의 개입을 권하면서 북한과의 대화를 추진하고 있다. 1년의 잔여 임기를 남긴 문재인 정부에게는 시간이 축박한 상태에서 Myanmar 사태의 돌발이라는 걸림돌을 만난 셈이다.
최근에 Trump 행정부와의 대화 이후 표류하고 있는 북한의 핵과 관련된 문제는 “ 북한의 비핵화는 가능하다 “ 는 題下(제하)의 글을 통해 다시 활기를 띠는 듯한 모양을 보이고 있다. 전 6자회담에서 미국의 대표 역할을 했던 Joseph DeTrani 대사가 쓴 이 글은 본인도 언급하다 싶이 신중하면서도 낙관적인 “북한과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성취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Denuclearization oh North Korea is Possible, Feb. 1, 2021 )
현재까지 미국 국무부와 안보 보좌관 실 에서는 대북 관계에 대한 철저한 검토가 진행 중이라고만 밝혀진 상태에서도, 언론에 보도되는 비핵화에 대한 한-미 양국의 관계자들의 입장은 과연 북한이 비핵화를 받아 들일 것 이냐에 대해 날카롭게 대립되는 것으로 알려 졌다.
어제 작고한 George P. Shultz 전 국무장관은 동서 냉전을 종식시키는 데서 크게 기여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고, 그의 작고에 전후하여 나온 그에 관한 글에는 처음에서부터 끝까지 상호 간의 신뢰 관계의 형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 글 중에서 7번째 파라그라프에 쓴 1973년 재무장관 시절에 소련의 대외 무역상 Patolichev 와 레닌그라드의 2차대전 전몰장병 기념비 앞에서 주고 받은 대화는, Shultz 의 인품을 보여 주고 았고, 또 소련 대외무역상과 교환한 대화로 미-쏘 냉전 관계를 불식할 기반을 마련하는, 상대방으로부터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깊은 신뢰관계를 형성하게 되는 기반이 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Life and Learning after One Hundred Ywars,: Trust is the Coin of the Realm, Reflections on Trust and Effective Relationships Across a New Hinge of History, George P. Shultz, December 13, 2020 )    
이러한 신뢰 관계의 중요성을 언급한 것은 Reagan 대통령의 1983년 한국 방문 시 국회에서 한 연설 속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Reagan 대통령은 이 연설에서 Full Reunification 을 언급하면서 이것은 한국인 들 간의 직접 대화에서만 가능하며, 당시와 같은 냉엄한 군사적 대립에서 출발해야 할 것은 유럽의 예를 들면서 남-북한 간의 군비 통제를 위한 직접 대화를 통한 신뢰 구축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 연설에서 Reagan 대통령은 1882년 한-미 수호조약 체결과정에서 조선 대표였던 신 헌이 했던 말을 언급하였는데, 당시 신헌은 먼 길을 온 것을 치하한 후 미국대표에게 우리에게 원하는 것 ( wish ) 을 말해 달라고 했는 데, Reagan 대통령은 100여년이 지난 당시 국회 연설에서 미국이 원하는 것은 Peace, Freedom and Prosperity 이라는 것을 밝혔다. (Address Before the Korean National Assembly in Seoul
November 12, 1983

새로운 기약
새로이 출범하는 Biden 행정부와 이에 대응할 한국 정부에게 당부하고자 하는 것은 이 두 원로 정치 지도자들이 강조한 신뢰의 문제를 더 한층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한국 정부가 Biden 정부에게 바라는 것으로 언급된 미-북한 간의 대회를 전 행정부가 개입된 Singapore 공동 성명에서 출발하도록 권한 것과 관련된 것이다. 또 신임 관료가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된 견해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이 두 언급이 실제로 궁로가 막힌 상태에서 북한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것으로 의도된 것이 아닐 것으로 본다.
한 달이 넘도록 전임자와는 다른 입장임을 강조하면서 북한의 핵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모색 하고 있는 미국 정부와 이제 일년도 채 남지 않은 임기 동안 무엇을 성사시키고자 하는 강한 의욕을 보이는 한국 정부의 견해 차이는 당연할 수도 있다.
언론들에 의해 지적되고 있는 사항들이 과연 얼마 동안 그 정보와 분석의 지속 능력의 면에서 정부의 그것과 경쟁성을 가졌느냐 하는 것도 문제 일수 있다.
정리를 위해 질문으로 대신 던진다면, 먼저 한국 정부는 최근에 적어도 Biden 정부 취임 전후에 북한과의 고위급 이상의 책임 있는 의견 교환이 있었다고 보는가? 이 것은 북한이 미국에게 밝힐 내용이지 한국이 대변할 성격이 아니다. 또 회담도 시작되지 않은 상태에서 최고의 책임자가 그 회담은 이렇게 해야 한다고 미국에게 말하는 것이 적절하고 또 그럴 관계가 성립되었다고 보는가?
한국 정부에게 중요한 것은 마-북한 관계에 관한 견해를 제시하기 보다는 우선 경직된 상태에 있는 북한과의 관계를 풀 실마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북한 측이 한국 과의 대화를 가지는 조건으로 지적하고 있는 사항을 모른체 하고 자기 견해만 강조하는 것이 한국 정부의 고질적인 병폐라고 한다면, 이제는 용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
미국도 그 국무부 대변인을 통해 나온 말이지만, 새로운 대북 접근이 북한의 한국에 대한 위협을 줄이는데 중점을 두되, 북한과 한국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데 미국의 관심이 맞추어져 있다는 입장과, 또 Blinken 국무장관 후보자가 상원 청문회에서 밝힌 바와 같이, 북한 문제가 역대 행정부를 통해 악화되어 왔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Ed Murkey 상원 의원의 질의에 답하면서,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의 확실한 동결이 있다면 그것에 대한 댓가로 맞추어진 제재 구제 를 평양에게 제공하는 "단계적 협정 ( Phased Agreement )"을 지지할 것이라고 한것  그리고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도움을 제공할 것으로 답변한 것, 등 에 충실하기를 바라며, 한국과 북한은 한 민족이 둘로 나뉘어져 있는 상태에 있는 분단 상태 라는 점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Blinken says U.S. Plans full Review of Approach to North Korea, by Reuter s Staff, Jan. 20, 2021 )
미국 관료들이 말하듯이 “all options are on the table.”, 이제 중요한 것은 이중에 어느 하나를 택할 용기와 이를 끈기 있게 추진할 의지 ( will )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