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01-12 19:17
미-북한 간의 북 핵 교섭 30여 년의 결과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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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북한 간의 북 핵 교섭 30여 년의 결과

현실적인 국제정치의 문제는 그 급박한 상황에서 그 정세에 대한 분석이나 그에 따른 대책 수립을 하는 것이 얼마나 그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었는가의 의미에서 되돌아 볼 때, 그 당시 대책보다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드러나는 것들에 의해 그 문제가 풀려가는 것으로 우리 눈에 나타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오늘 아침 도착한 E-mail 을 보다가 요즘에 들어 활동을 강화하는 미국의 Stimson Center ( 38 North ) 에서 온 것 중에서 Robert Carlin,( KEDO 참여, 1996-2006, KEDO.org 참조  ) 이 쓴 KEDO ( Korean Peninsula Energy Development Organization ) 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는 글이 있었다. 여기에는 같은 취지의 Leon Segal 의 글도 있었다.
그가 15년 전 1월 8일, 북한의 항구에서 마지막으로 철수했던 당시는, Carlin 이 지적하는 대로 북한이 핵 무기를 보유하지도 않은 때였고, 따라서 지금 보다는 훨씬 단순하게 처리될 수 있는 문제였다.
1994년 Clinton 민주당 행정부와 북한이 체결한 Agreed Framework 에 의해 시작된 이 사업은 취임 시부터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 Bush 공화당 행정부에 의해 2006년 완전히 포기되었다.
2002년 11월 경으로 기억나는데, 퇴근하려고 나서는 데 전화 벨이 울려서 받기는 했으나 빨리 나가려는 생각만 있었다. 뜻밖에 그 전화는 해외에서 온 전화였고, 퇴근한 후 집에서 받기로 하고, 집에 도착하자 마자 전화를 받고는 한 순간은 정신이 멍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 전화는 나에게 미국의 북한에 대한 정책에 관해 질문을 하면서 Bush 정부가 북한에 개입할 것으로 보느냐고 물었다.

북-미 관계에서의 핵 문제
1976년 민주당 카터 행정부 에서 시작된 미-북의 관계는 주한 미군의 철수 문제로 시작되어 미-북한 -한국 정부의 3당국자 회담의 제의로 이어지기는 했으나 양국 관계의 진전은 없었고, Clinton 집권 시인 1994년 제네바에서의 양국간의 회담을 통해 북한 핵 문제에 관한 Agreed Framework 협정이 쳬결되었다. 여기에는 북한이 원자로 등의 시설을 전력을 위한 목적에서 건설한다는 주장에 따라 플류토늄 등의 핵 물질을 이용한 방법을 경수로에 의한 것으로 대체하면서 이것을 위한 발전 연로를 공급하는 것으로 KEDO 를 설립하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와 더불어 두 나라의 관계 발전을 위하여 2000년 10월 23일 Albright 국무장관이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으나, 정권이 공화당으로 바뀐 후 Bush 행정부는 북한을 Rogue State 라고 부르면서 이 협정에 의한 지원을 지연시키기 시작하였다. ( South Korea-US Relations and North Korea : A Cleavage in Their Approaches and Perspectives, Korea and World Affaires, Fall, 1996 pp. 474-491 본인의 글 참조 )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2001년 9월 11일, 이슬람의 극단주의자들의 항공기 탈취와 뉴욕 무역 센터에의 공격으로 미국은 이에 대한 반격을 주장하는 여론이 높아졌고 이것은 같은 Rogue State 로 언급된 북한에 대한 공격을 언급할 정도로 비화되었다.
나는 정확히 언제부터 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 즈음하여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 간에는 한반도 문제 접근에 차이가 있다고 보는 입장을 취하게 되었고,, 그리고 한반도의 통일 및 평화체제의 수립 등의 문제에서 이 차이는 두드러 진다고 보기 시작하였다.
이 문제는 한반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예를 들면, Nixon 공화당 대통령이 중공을 방문하고 관계 개선을 시도했으나, 정작 미-중공간의 국교 수립은 민주당의 카터 대통령 때 이루어 졌고, 또 베트남의 경우에도, 휴전을 협상한 것은 Nixon 공화당 정부였으나, 국교 수립은 민주당의 Clinton 행정부에서 이루어 졌다는 것은 우연한 사실이 아니었다.
2002년 11월에 받은 전화에 내가 답을 해야 될 것은 Bush 행정부가 언제 북한에 개입할 것이냐에 대한 것이었다. 당시 미국 행정부는 미 의회로부터 중동의 이라크를 공격하는 문제에 대해 승인을 얻고 그 준비를 위한 기간으로 3개월을 확보하고 있는 상태에서 미국 내에서는 북한에 대한 공중 공격을 주장하는 논문들이 나오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에 개입할 것을 주제로 한 질문을 던진 것은 그 당시에 북한에 대한 공격을 주장하는 논리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그 당시 나는 Bush 행정부가 1차 집권기에는 개입을 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답하였고, 2차 집권기에는 가능할 것이라고 덧 붙였다. 그러나 11월에 미국은 특사를 북한에 파견하여 북한이 우랴늄 농축을 시도했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Agreed Framework 의 위반을 지적하면서 북한을 압박하고 있었다.
이라크에 대한 공격을 앞두고 북한에 대한 공격론을 부축이는 것은 전략적인 搖動檄書 의 의미로 보여졌고, 땨라서 이라크 전쟁이 진행되는 기간에는 북한 문제에 개입할 여유가 없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또 실제로 북 핵의 문제로 중국이 제시한 6자 회담이 진행되는 과정에 미국이 참여한 것은 2005년 9월 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그 첩보를 위한 비행기가 요격되는 과정에서 긴장이 악화되자 2003년 4월 23일에 미국, 중국, 북한이 참석하는 3자회담을 열었으나 성과는 없었다.

6자회담, 북한의 핵 보유 선언:
2002년 Kelly 의 평양 방문에서 미국이 북한 우랴늄 농축의 문제를 제가하자 2003년 1월 10일 북한은 NPT 로부터의 탈퇴를 선언함에 따라 미-북한 간의 위기가 조성되었으나 4월에 열린 미-북한-중국의 3자회담에 응하였다.
중국이 제시한 6자 회담은 2003년 8월에 북경에서 개최되어 2007년 까지 총 6 round 11번의 회담을 가졌다. 북한은 미국에게 불가침 조약 체결, 외교관계 정상화, 등을 단계적으로 추진할 것을 제의했고, 영변 핵 시설의 폐기와 미사일 실험 중지 등을 약속하면서 북한에서는 우랴늄 농축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 이하 Arms Control 자료, Chronology 참조 )
2003년 11월 5일, KEDO 의 활동과 관련하여, 국무성 대변인 Adam Ereli 는 "이 프로젝트와 관련한 미래는 없는 것” 으로 Bush 정부는 믿고 있다고 말했다.
2004년 회담에서 한국은 중국, 러시아의 지지를 얻어 북한에 제의에 따른 대가로 북한에 에너지 공급을 제의하였으나 2005년 2월 10일 북한 외무성은 북한이 핵 무기를 생산하였다고 발표를 하였고, 5월 11일 외무성은 영변 원자로에서 8,000개의 연료 막대를 추출하였다고 발표하였으며,미국은 이에 대해 10월 31일 북한에 대한 Banco Delta Bank 와 관련된 경제적 제재를 발표하였다
2006년 6월 1일 KEDO는 북한에 두 개의 경수로 원자로 건설에 관한 프로젝트를 공식적으로 종료한다고 발표하였다. 이것으로 Clinton 행정부의 비핵화 시도는 완전히 실패로 돌아 갔다.
KEDO는 11년 6개월 동안 북한의 비핵화를 지원하기 위해 설치되었고, 총 공사비 46억 $ 이 책정되었으며, 이중 15억6200 만 $ 이 투자되어 공정율 35%를 기록한 가운데 종료되게 되었다. 뉴욕에 설치되었전 사무소는 2007년 5월에 폐쇄되었다.
한편 북한은 2006년 7월 4-5일, 장거리 미사일인 대포동 2호를 포함한 7기의 탄도 미사일들을 시험 발사하였고, 2006년 10월 3일 북한 외무성은 안전을 보장하는 조건에서 핵 실험을 할 것이며, 핵 무기의 사용, 이전 등을 금지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성명서를 발표하였고, 이에 대해 UN 안보리는 결의안 1695호 를 채택하고 북한에게 탄도미시일 발사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북한은 2006년 10월 9일 풍계리 근처에서 1차 지하 핵실험을 실행하였고, 북한 외무성은 전 한반도에의 비핵화는 김 일성 위원장의 최종적 지시였으며, 북한의 궁극적 목표라고 발표하였다.
2006년 11월 28일- 12월 1일 에 열린 6자 회담 대표들이 모인 자리에서 북한 대표 김계관은 2005년 9월의 합의 사항을 언급하면서 북한은 핵 프로그램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으나 그 것을 일방적으로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언명하였다
UN 안보리와 미국의 제재 조치가 계속 됨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2009년 5월 25일 2차 핵실험,을 했고, 북한은 2010년 1월 11일, 북한 외무성은 우월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하여 휴전 조약을 평화조약으로 대체하자는 제안을 한 후, 1월 14일 천안힘 공격, 그리고 11월에 연평도 포격을 가헸다,
2010년 9월 28일 북한에서 3차 당대회가 열리고 김정은이 중앙 군사위원회의 부 위원장으로 임명되어 권력 승계의 작업이 진행되었다. 2011년 12월 17일, 17년간 집권해온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으로 12월 21일 김정은이 공식적 권력 승계자가 되었다.
북한은 2012년 4월 13일 수정된 헌법 전문에서 북한을 "핵 국가" 로 변화시킨 김정일의 업적을 삽입하였다. ( 38 North, Affiliate, North Korea Economy Watch, Update, 2012, 06, 14 )

김정은의 승계와 핵 무기화 작업
김정은은 중앙군사 위원장의 지위에서 2013년 2월 12일 3차 핵 실험을 했고, 2012년 4월 16일 이동식 ICBM 의 시험발사를 했고, 12월 12일에는 은하-3의 로켙을 우주로 발사하는 등 미사일의 무기화를 계속 추진해 왔다.
다시 2016년 1월 6일에는 4차 핵 실험 ( 수소 폭탄 )을 하였고, 2월 7일에는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였다. 2016냔 8월 24 일 에는 SLBM 을 성공적으로 발사하여 이른 바 선진 핵 국가들이 추구하는 Triad ( 지상탄도 미사일, 잠수함 발사 미사일, 그리고 폭격기에 의한 핵 공격 등을 갖추는 체제 ) 를 갖추려는 태도를 취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17년 7월 28일에는 미국 전역을 대상으로 하는 ICBM 을 시험 발사하였고, 9월 3일에는 6차 핵실험을 했다. UN 은 2017년 9월 3일 2375호 결의안을 채택하고 제재를 가했다. 같은 날 미국 대통령 Trump 는 UN 에서의 첫 연설을 통해 북한을 비난하면서 김정은을 로켙 맨이라고 부르며 북한을 완전 파괴할 것이라고 공격했다.
Eric Talmadge 는 2017년 후반기부터 북한이 실험하고 있는 미사일들의 정체가 러시아가 개발한 Iskander 와 닮은 것을 지적하면서 전문가들이 이 미사일들의 특징을 낮은 고도로 침투하고 초 고속이면서 정확도가 높고 따라서 요격이 쉽지 않은 것을 들고 있슴을 강조하면서, 여기에 김정은위원장이 관심을 두고 확대하고 있으며,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 미치는 영향을 언급하고 있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은 관심을 두고 볼 일이다.( Experts see Russia Fingerprints on North Korea’s New Missiles, May 10, 2019 )
Trump 행정부에서의 북 핵 교섭에 관한 내용은 여기서 다시 되풀이 하고 싶지 않다.( 미-북한 관계의 진전과 불확실성, Research and article, www.youngs-kim.org 참조 )  다만 특기할 사항은 북한이 작년 10월 야간에 진행된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일부 언론이 괴물로 표현했던 화성-15의 신형이라고 보도한 ICBM 이 의미하는 것에 대한 평가다.

새해를 들어가며,
2021년 1월 8일은 김정은 위원장의 8차 당 대회에서의 연설, 그리고 1월 11일은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사가 발표되면서, 한국의 언론들이 내린 보도에 포함한 평가로 신년 정국에 코로나 혼란 속에서 한국인들은 새로운 기미를 찾기 위해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대체적으로 언론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은 김정은 위원장이 언급한 내용들, 남-북간 합의의 준수, 첨단 군사장비 반입 금지, 한미군사훈련 중단, 문대통령의 첨단 군사장비의 개발 반입에 대한 해명,등을 본질적인 문제로 보고 있으며, 방역 협력, 인도협력, 관광 등의 문제를 비 본질적 문제로 구분하고 있슴을 강조하고 있었다. ( 아시아경제, 2021, 01,09 )
이에 대해, 문대통령은, 일부 언론들에 의하면, 민생 경제, 방역 등에서의 협력의 확대 국제적 지원과의 연결 등의 강조, 대 전환을 가져올 남북 대화의 제의 등을 제시하고 있으나 ( 한겨례, 2021, 01-12 ), 일부 논평가들은 북한이 한국이 수용하기 힘든 제의를 했다는 입장, 또 북한이 전술 핵의 문제 언급, 핵 강화에 의한 방어를 언급하는데 대한 문대통령의 대응이 없다는 데 에서 올해 남북관계는 경색 국면이 될 것으로 전망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와 더불어 정부 고위층이 미국 관계 통을 통해 미-북 회담을 가질 것을 권하는 의사를 전달했다는 보도가 나돌고 있으나 귀추를 주목해 볼 일이다.
미-북 간의 비핵화를 두고 벌인 지난 40 여 년 간의 협상의 결과를 지금 종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아직 진행 중이고, 앞으로 등장할 미국의 Biden 행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을 지켜 볼 뿐이다. Biden 행정부의 대 북 핵 데스크의 구성을 이룰 사람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으나 그 사람들이 모두 한국의 입장에서 바람직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특히 이들 중에는 지난 Ave 일본 총리처럼 공공연하게 한반도의 전쟁 종식을 반대한다는 견해를 가진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일본의 요구대로 한반도에서 남-북 간에 냉전적 대결을 강화시켜 미국의 대 일본 지지 입장을 공식화 하려는 견해를 가진 사람도 있다.
예를 들어 Biden 대통령이 일본의 센카쿠 영토에 대한 중국의 침략을 막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언론에 보도되고 있으나, 미국 의회에서의 고위 관료 청문회에서 미국이 일본을 위해 중국과 전쟁을 할 수는 없다는 의견이 명백하게 지배적이었다는 것도 또한 사실이라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다만 우려하는 것은, Trump 행정부와의 관계에서도 나타난 것이지만, 한국 정부의 정책적 Ambiguity 에 대한 편향은 상대방으로부터 불신을 당하는 요인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이것이 다시 재현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에서도 장기적 교섭에서 나타날 수 있는 Mannerism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으며, 정당간 정책의 극심한 차이로 인한 손실을 줄이는 데서 이것은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북한 문제에의 접근에서 중국적 요소에의 커다란 의존을 줄일 필요가 있다. CFR의 Haas가 언급한 것처럼 한반도의 중국으로 부터의 정책적 독립 및 격리를 궁극적으로 추구한다면, 북한의 과거의 대 중-쏘 관계에대한 정책에서 고려할 때 충분히 가능한 논리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애용되는 관용어로 표현하자면 易地思之(역지사지) 와 같은 것, 다시 말하자면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는 것, 그리고 북한의 변화를 원한다면, 자신부터 변해라 하는 것 등을 북한과의 협상을 하는 당사자들에게 강조하고 싶다. 이 전제 위에서 북한에 대한 설득이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